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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허경은-우리는 낯선 곳에 놓일 필요가 있다[2-1]

Benya_1004 2024. 1. 25. 17:43

 여행 에세이를 읽고 싶을 때, ‘낯선 곳에 놓일 필요가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선택했다. 여행을 간다는 건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탐험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설령 같은 곳에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날씨, 시간, 동행자 등에 따라 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1장 멀어진 기억 中 기억의 수집
[본문발췌]
 수집은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들을 보며 애들 장난감 같은 걸 왜 모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각각의 피규어에는 그것을 장만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사람의 기억도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중략) 외국을 다닐 때마다 기념품을 사 오는 사람들은 기억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갑을 연다. 흔해 빠진 볼펜은 집 앞 문방구에서도 살 수 있지만 ‘I LOVE NY’라고 적힌 볼펜은 뉴욕에 가야만 살 수 있고 그날의 기억 또한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중략)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것. 수집이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재테크용 수집가에겐 돈을 남기겠지만, 기억 수집가에겐 영혼을 남긴다. 나라는 영혼과 마주할 수 있는 고귀한 시간은 이렇게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여행을 갈 때 가족, 친구, 지인에게 선물하고자 기념품 Shop에 들린다. 심플한 물건이라도 여행지와 관계된 것이라면 의미가 있다. 누군가와 기념품을 주고 받으면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상호 전달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 사람을 만나면 내가 선물했던 기념품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당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기억의 수집은 인생을 아우르는 표식이다. 
 
1장 멀어진 기억 中 공항, 떠난 자와 남겨진 자
[본문발췌]
 그동안 공항을 떠나만 봤지 누군가를 배웅하거나 기다려본 적이 없다. 떠나기만 하는 건 참 이기적인 경험이랄까. 떠나면 그만이라는 말은, 남겨진 자들의 간절한 기다림에 무관심을 던지는 것이다. 비로소 남겨져 보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중략) 남겨진 자가 가질 공허함을 그 동안 너무 외면해 버렸던 건 아닐까. 모든 초점은 왜 주로 떠난 자에 맞춰지는 걸까. 움직이는 것만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겨진 것,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는 필요하다.
 (중략) 기다림이 이런 기분이라는 걸 그전엔 미처 몰랐다. 남겨진 자들의 공허한 마음이 이런 것들이었을까. 떠나는 자가 앞날을 기대하며 어깨에 힘을 실을 때, 그 등 뒤로 떨어지는 그리움을 먼저 줍기 시작하는 건 마치 남겨진 자의 몫인 것만 같다. 그 공허함을 이해한다면 한 번쯤, 두 번쯤 인파 속에 묻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봐 주는 것도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공항에서의 기억과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이 만나면 이별하기 마련이고, 떠난 자와 남겨진 자에 대한 회고는 어떤 장소에서든지 일어난다. 공항이 국내와 국외를 구별하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더욱 이별이 애달프지만,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떠난 자일 때가 많았을까, 남겨진 자일 때가 많았을까.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본다.
 떠난 자보다 남겨진 자의 그리움이 크지 않을까. 떠난 자는 남겨진 자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남겨진 자는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떠난 자의 부재에 상실감을 느낀다. 공허함을 이기는 방법은 떠난 자를 추억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목표가 있는 사람과 목표가 없는 사람의 행위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각자 삶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소지하고 있을까?  
 꿈을 갖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떠난 자)과 상실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남은 자)에게 성원의 메시지를 남긴다. 
 
2장 혼자 또는 둘 中 이별 여행
[본문발췌]
 “둘이서 배낭여행은 가는 거 아니래. 십중팔구 헤어지거든.”
(중략) 배낭여행 중 친구와 싸우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다. 혈액형별 성격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A형의 성격대로 불만을 쌓아만 두고 폭발할 단계까진 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폭발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편한 기색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중략) 무작정 뛰어든 배낭여행의 여정은 매번 계획을 세워야 하는 부담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선택이라는 숙제가 놓여졌다. 운이 좋아 친구와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날이면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는 숙제지만, 인간이란 게 다 하고 싶은 기호가 있고 성질이 달라 매번 똑같은 선택을 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했고, 이번에 내 뜻대로 했다면 다음에 미안해서라도 친구의 뜻을 따라주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중략) 둘이서 떠나는 해외 배낭여행은 이별 여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지할 곳도 한 곳뿐이지만, 실패의 책임을 물을 대상도 한 곳뿐이다. 
 
 둘이서 배낭여행을 가면 헤어진다는 속설을 들었다. 둘만의 여행에서 뜻이 안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방적인 배려가 반복되면 상대방은 권리로 인식한다. 누군가 배려하면 상대도 양보를 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왜 망각하는 것일까.  
 여행의 동반자를 선택할 때 그와 함께 해서 즐거울지, 나와 얼마나 맞을지 진중하게 고려한다. 어렵게 선택한 동반자와 해외여행을 가서 지지고 볶고 싸운다면 혼자 가느니만 못하다. 해외에서 갈등이 빚어질 때, 서로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혼자 또는 둘'이라는 말은 여행에 국한되지 않는...가족, 친구 등의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둘이 하는 결혼생활이 그렇다. 의지할 곳도, 실패의 책임을 물을 곳도 한 곳뿐. 그렇다면 현명하게 둘이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지 않을까. 누가 더 양보를 하는가의 문제로 싸울 것인가. 배려하며 함께 하는 즐거움을 찾을 것인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매일매일 배낭여행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