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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허경은-우리는 낯선 곳에 놓일 필요가 있다[2-2]

Benya_1004 2024. 1. 26. 14:51

3장 다른 그림 찾기 中 히잡을 벗은 그녀
[본문발췌]
 ‘오 세상에……’
 “내 머리 처음 보지?”
 F가 히잡을 벗고 긴 생머리를 어깨너머로 넘기며 부끄러운 듯, 설레는 듯 오묘한 미소를 띠며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F를 만난 지 삼 개월쯤 되었는데 히잡에 동그랗게 감싸진 얼굴에만 익숙했었다. 집에서는 히잡을 벗고 있는다며, 내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자신도 즐겁다고 하였다. 그녀는 히잡을 둘렀을 때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전에는 친구들 간에 이라크 아줌마로 통했는데 긴 생머리의 그녀는 아가씨라고 해도 어울릴 만큼 여성스럽고 예뻤다. 우리 친구들 중 F의 히잡 속 머리카락을 본 사람은 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집으로 초대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중략) 타국에서 또 다른 국적의 이민자들과 만날 때면 마음으로만 분명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이 있다. 내 나라도 너의 나라도 잘 모르지만, 행복을 찾아 떠돌고 있는 방랑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말도 문화도 다른, 하지만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꿈을 가진 이방인이라는 점.
 
 히잡을 쓴 그녀를 보기 힘든 한국과 히잡을 벗은 그녀를 보기 힘든 외국이라...
 필자가 히잡을 벗은 가정에서 만난 그녀는 자신을 얽어맨 것에서 해방된 것처럼 솔직하다. 종교와 관습은 규약이 되고, 타인을 대할 때 배리어가 되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낼 수 없게 한다.  
 
 타국에서 다른 국적의 이민자들과 만날 때 느끼는 동질감이 이해된다. 방랑자, 이방인, 비주류 등 이민자를 표현하는 말이 있지만, 그들은 타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한 인간일 뿐이다. 서로 같은 처지라면 상대에게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잘 되게끔 응원하고 싶다. 모든 나라에 있는 방랑자, 이방인, 비주류가 오늘도 힘을 내서 살아가길 기원한다 .
 정치적 이념, 종교적 갈등, 지역 감정, 빈부격차 등으로 갈라져 있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떠올린다. 자국민 간에 첨예한 갈등이 있는데, 타국민을 온화하게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어디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유토피아적인 발상이겠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지만,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눈앞에벽이 있으니 전진하지 말자는 얘기는 '그냥 포기하자'로 들린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소중하고, 각자가 고유한 존재이므로 상대를 배려하고 다른 의사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고대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에 대한 모략과 비판이 있을 때 '내가 나의 신념에 충실하며 살 듯 상대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이 나라의 보편적인 가치로 거듭나길 바란다.  히잡을 벗은 그녀처럼 진솔한 모습을 상대에게 보일 수 있기를...
 
3장 다른 그림 찾기 中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
[본문발췌]
 캐나다에 있는 동안 여러 가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몇 번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처음엔 주변에 주로 커피숍이 흔해 스타벅스, 팀홀튼, 세컨컵 등 주변에 보이는 매장마다 들어가 지원서를 받아 왔다. 그들의 지원서 항목엔 공통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사진 칸이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지인의 연락처를 두 개 이상 넣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략) 면접관들은 나이도, 결혼 계획도 묻지 않았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그들은 무언의 대답을 했다.
 ‘우리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중략)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이어서 결혼을 했는지 묻는다. 내 나이 묻지 말라고, 그저 낯선 곳에 나부끼며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흘러간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이곳은 한국이다.
 
 국내나 해외나 취업 시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게 불문율이나, 사람을 뽑을 때 보는 기준이 다르다. 지연, 학연이 영향을 미치는 한국에서 나이와 결혼 계획도 매우 중요하다. 이 사람이 회사에 입사한 후 계속 근무할 수 있는가, 부서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이익 추구를 위해 생산성이 저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캐나다의 지원서에 사진 칸이 없고 지인의 연락처를 두 개 이상 넣어야 한다니 신선하지 않은가? 외모를 보지 않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평판을 듣겠다는 의미다. 친구, 지인에게 검증된 나를, 입사 후 동료에게 얻는 평판보다 신뢰한다는 걸까? 친구, 지인은 나의 장단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회사에 설명할 때 가감이 없을 것이다. 친분이 있되, 직장에 나의 장점을 대변할  있는 사람.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는 누군가가 두 명 이상 있어야 하니...평소의 모습이 중요하다. 그곳에서 일할 때는 나이와 결혼 계획은 중요하지 않다.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
 ‘우리는 궁금합니다. 말해주세요.’
 
 한국에서 ‘낯선 곳에 나부끼며 살아가는 인생’이 허용되지 않는다. 정규직, 계약직을 떠나 회사가 필요할 때까지 연장 근무하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정은 입사를  위해 접어야 한다. 취업시장에서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는 나를 합격시키지 마세요로 들리겠지. 또한 일상에서 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는 친해질 생각이 없어요로 들릴 것이다. 한국에서 친분을 쌓는 건 나이, 가족 관계, 고향, 출신학교 등 사적인 부분을 오픈한다는 거니까.
 때로 블라인드를 치고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사교활동에서 선택지가 없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를 보는 세상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 
 
 우리는 낯선 곳에 놓일 필요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주는 불편함 속에서 해방감이 찾아온다. 규율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순간이 생기고,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거리를 두고 ‘나’를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여행’은 주요하다. 나는 삶의 여백을 새기고, 앞으로의 방향을 알기 위해 불현듯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