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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창사특집 [고래와 나] 1부 Review

Benya_1004 2024. 1. 29. 22:59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래’에 관심이 있었다. 바다에 살지만 포유류에 속하는 고래는 미지의 세계처럼 다가왔었다. 사람을 공격한 전례가 있는 상어는 매우 무서웠으나, 고래는 거대한 몸집에 비해 순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어릴 때 스케치북에 그렸던 고래는 일종의 마스코트처럼 귀여웠었다. 스케치북을 가득 채워도 전체적인 선은 둥글둥글했고 선선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마치 ‘친구’같이 느껴졌다.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에 안주하고, ‘고래’를 잊고 살았던 어느 날 일러스트를 보았다. 고래가 바다와 구름 사이에서 숨을 쉬면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고래가 나에게 평화와 공존, 자유로움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때부터 고래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지금 이 순간'  고래는 바다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YouTube에서 본 고래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죽어가는 엄마를 살리려는 새끼 범고래들의 선택’, ‘보트 위 여성에게 다가온 범고래…왜?’, ‘사람을 구한 혹등고래 몸짓’, 고래 파고든 500kg 그물…잘라주려 했더니‘, ’ 30년이나 갇혀서 고래쇼에 동원된 범고래의 한 맺힌 복수’, ‘어선에 부딪힌 어미 범고래의 요청’ 등.
 인간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인간에게 와서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영상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구해준 인간의 주위를 맴돌고 감사를 표했다는 말이 아름답게만은 들리지 않았다.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고래가 왜 낚싯줄이나 어망에 걸려서 상처를 입고,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섭취해서 병에 걸렸는지…잘 알기 때문이다.

 2023.11.01. SBS 창사특집 [고래와 나] 티저가 발표되었을 때, 고래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었고 고래가 인간에 의해 상처받고 죽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개국 30개 지역 로케이션 촬영으로 만들어진 자연 다큐멘터리는 국내 최초로 고래를 근접 촬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1부 머나먼 신비(2023.11.18)
 첫 번째 타자는 모리셔스 향고래 중 이렌의 무리였다. 수컷은 짝짓기를 할 때만 왔다가 떠나기 때문에 이렌이라는 어미 고래를 중심으로 한 모계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SBS 촬영팀은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깊은 수중에서 모리셔스 향고래의 수면을 목격했다. 다른 고래들과 달리 몸을 꼿꼿이 세워 수직을 유지한 채 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이버들은 향고래의 수면을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하였다. 향고래는 눈을 감고 있어 깊은 수면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뇌의 절반이 깨어 있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향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머리를 위로 향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물구나무를 서듯 자는 향고래도 관찰되어 그들의 수면 루틴은 알 수가 없었다.

 수면 중인 고래들 중에서 생후 11개월 된 새끼 고래 미리암만 깨어 있었다. 짧은 호흡 때문에 숨을 쉬기 위해 자주 바다 위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 중에 갑자기 등장한 상어 한 마리가 미리암을 향해 다가가자, 자고 있던 어미 고래가 위험을 감지하고 위협적인 소리(CODA)를 냈다. 놀란 상어가 황급히 도망을 치고, 어미 고래의 소리를 들은 다른 고래들도 일제히 잠에서 깨어난다.
 어미 고래의 모성애와 새끼 고래를 지키기 위한 다른 고래들의 일사불란한 대응을 보자 마음이 뭉클했다. 

 향고래와 인간의 비슷한 점은 육아 방법에 있었다. 어린 고래들은 암컷이든 수컷이든 따로 놀지 않고 모두 함께 놀았다. 어미 고래는 3~4년마다 한 번씩 새끼를 낳는데, 출산율이 낮다 보니 새끼 고래가 태어나면 모두가 지극정성으로 돌본다고 한다. Marguerite Formation(향고래 무리 가운데 새끼나 약한 개체를 두고 건강한 어른 고래들이 주변을 보호하는 행동)은 인상적이었다.

 수중 촬영감독 르네 휘제는 향고래가 너무 착하다고 했다. 꼬리 한 번만 휘둘러도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며, 눈길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부드럽고 매사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1986년 산업포경이 끝나기까지 약 76만 마리의 향고래가 인간에 의해 희생되었다. 수많은 고래 중 향고래에게 포경이 자행된 이유가 무엇일까?  향고래 머리의 경뇌유 샘에서 나온 기름으로 양초나 연료, 윤활유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석유 기름이 발견되기 전까지 고래 기름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자원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얘기하며, 그동안인간이 가진 우월한 부분에 주목해 왔다.. 뛰어난 지적 능력, 언어 및 도구의 사용, 공동체 의식, 문화 형성 및 창작 등.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늘 동물보다 우위에 있었고 당당하였다. 인간이 동물을 살육하고 이득을 취해도 괜찮았다. 지구 생태계가 교란되었지만, 인간은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 사냥하는 동물과 (재물에 대한) 욕심과 재미를 위해 사냥하는 인간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수중 촬영감독 르네 휘제는 덧붙였다. 향고래는 인간의 조상이 자신들의 조상을 죽였으니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그래서 인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고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고.

자연에 순응하는 고래들의 평화가 깨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