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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창사특집 [고래와 나] 4부 Review

Benya_1004 2024. 2. 14. 02:03

 어릴 때 돌고래쇼를 보는 것이 좋았다. 숙련된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돌고래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할 때 마냥 신기했다. 인간과 동물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할까. 당시 수조에 갇힌 동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쇼’를 위해 진열된 장식품처럼 관중 앞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기만 했다.

 10분의 쇼를 위한 평생의 고독.

 4부를 시작하며 나온 말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2000년 캐나다 마린랜드의 해양 조련사였던 필 데머스는 야생에서 생포한 새끼 바다코끼리 스무시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스무시는 필을 엄마라고 생각했고, 필은 스무시를 아기처럼 여겼다. 사람들은 필과 스무시를 보기 위해 마린랜드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필을 포함한 조련사들은 마린랜드에 있는 동물들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고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필은 자신이 떠나면 스무시가 힘들어 할까봐 참고 견디었다.

 어느 날 물 소독 장치가 고장이 났고, 마린랜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장치를 빨리 고치는 대신 염소량을 늘렸다. 그 결과 동물들은 화학적인 손상을 입었고 바다표범은 눈이 멀었으며, 바다사자는 안구가 빠졌다. 스무시도 털이 벗겨지고 몸이 짓무르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필은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참담한 실상을 보고 침묵을 하자니 공범이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더 이상 방관을 할 수 없어 마린랜드를 나와 내부 고발자가 되었다.
 
 마린랜드의 전 해양 조련사 크리스틴 산토스(필 데머스의 연인)는 범고래 키스카의 훈련을 맡았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12년 동안 마린랜드를 떠나지 못하고 키스카의 옆에 있었다.

 크리스틴이 입사했을 때 마린랜드의 범고래는 6마리였는데, 퇴사할 때는 키스카만 남았다고 한다. 순하고 활발했던 키스카는 친구 누카와 유일한 딸인 아테나를 잃고 우울해했다. 크리스틴은 키스카와 같이 있을 때 교감을 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없는 밤이 되면 키스카는 수조를 빙빙 맴돌았다. 

 필이 내부 고발자가 되었을 때, 연인 크리스틴 산토스는 마린랜드에서 해고가 되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키스카에게 크리스틴은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11년째 홀로 수조에 갇혀 있던 키스카는 자해하였다. 머리와 몸을 벽에 부딪혔고, 수조의 날카로운 구석에 몸을 긁어서 피가 났다. 급기야는 삶을 포기한 듯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1979년 아이슬란드에서 포획된 3살의 키스카는 좁은 수조 속에서 44년의 시간을 보냈고, 그 중 11년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로 불리면서 홀로 수조에 있어야 했다.

 2023년 3월, 키스카가 숨을 거둔 뒤에야 수조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사교적인 동물인 범고래가 혼자 수조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니... 누구든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외롭고 우울하고 자포자기를 하지 않았을까? 자의식이 있고 사교적인 고래를 상자에만 갇혀서 살게 한 건 인간이다. 고래는 자신이 감금당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언제 해방될지 몰랐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10년 동안 필과 마린랜드의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필의 목소리를 들은 시민들이 동물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라고 마린랜드에 요구를 했고, 2019년 그 노력에 힘입어 캐나다에서는 [고래의 사육을 멈추기 위한 형법]이 개정되었다.
 
 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개인의 힘은 작아도 공동체의 힘은 강력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개개인이 뜻을 모아야 한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서로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고래가 하는 말이 들리기를 소망한다.